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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을 돌아보며

하민스 2024. 1. 1. 01:55

한해를 돌아보기 위해 티스토리에 글을 쓰기로 했다. 나는 일년동안 어땠나? 일년간 어떤 발전을 했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으며 어떤걸 느꼈을까? 오늘 하루종일 생각했었다. 

먼저 나는 올해 상반기가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교에서 석사 마지막 학기였다. 이제껏 제대로된 연구를 진행한적이 없었기에 졸업을 위한 실험을 구상해야하는 상황이었고 아마 3월까진 방황했었던것같다. 어쨌든 졸업할때까지 주제 정하고 진행하는데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지만 사실 올해 코로나에 처음 걸려 죽을것 같은 고생도 하고 2월엔 토플도 응시했다. 2년 전보다 점수가 올라서 105점을!! 자신없던 리스닝과 리딩을 운좋게 만점받아서 나온 결과였다. 잘 봐서 정말 다행이었다. 

사실 작년부터 여자친구랑 같

이 동거를 하게됐고 많이 다퉜었다. 그리고 작년에 연구실의 지도교수님이 은퇴하시고 새로 교수님이 부임하시면서 연구실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거기에 적응하랴, 연구주제 정하랴 작년 하반기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그게 올해에도 이어졌었고 그래서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다.

동거했던 신림동 원룸!

올해 2월엔 여자친구 및 가족들끼리 후쿠오카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그때도 가족들과 여자친구 사이에서 너무 힘들었었다. 여자친구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탓에 여자친구랑만 자꾸 단독행동을 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자연스레 가족에겐 홀대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섭섭함이 쌓이다 결국 여행이 끝나고 인사를 안하고 가는 바람에 크게 혼나게 됐고 그 일로 여자친구랑도 많이 다퉜었다. 좋은 남자친구이자 좋은 가족구성원이 된다는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것을 깨달은 순간이었고 어떻게 하면 좋았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 섭섭했지만 참고 배려해줬던, 혼낼때 화내더라도 어떻게 했어야했는지 왜 화가 났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같은 이유로 연구실 사람들과 교수님께도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컸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혼나기도 했고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자주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였다. 프로페셔널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해서 많이 괴로웠다. 인간관계 또한 늘 쉽진 않았다. 상황에 따라 어떤 표현을 해야하는건지, 도움을 청할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계속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늘 정답은 없었고 늘 쉽지 않았다. 

환경조절학회에서의 첫 발표

 

결론적으론 여자친구랑 같은 시기에 졸업을 했다. 시간에 맞춰 수월하게 논문을 작성한 여자친구완 달리 나는 늘 마감을 어기고 잦은 실수를 반복하며 어설프게 졸업을 준비했다. 그래서 사실 졸업을 했을 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 보단 찝찝함이 컸다. 

졸업 후 여자친구(Myrte)가 귀국하기까지의 잠깐의 시간동안 많은 곳들을 여행하기도 했다. 순천, 여수가 대표적이었고 사실 이 외에도 연구실에서 엠티를 다녀갔던 파주 출판단지 (지지향)나 가족끼리 갔던 제주도, 속초, 친구 만나러 1박 2일로 다녀간 강릉까지 전국 방방 곳곳을 짧게 여행했다. 덕분에 사진찍기 좋아하는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내가 졸업한 뒤 Myrte는 한국에 머물지 네덜란드로 취업할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나의 파트너 거주허가증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미래를 그려가기 위해 Myrte는 먼저 갔다. 당시엔 집도 겨우 기숙사같은 곳을 구했고 취직도 확정되지 않은 채로 간터라 Myrte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었다. 2차면접까지 간 회사들 모두 떨어지고 하루만에 20군데 이상 지원하며 겨우 직업을 구했다. 지금은 잘 다니고 있지만 사실 원치 않게 네덜란드로 가서 나한테 불평을 한사발 ;; 쏟아내며 매번 징징댔다. 하늘의 별따기라는 네덜란드에서 집구하기를 위해 없는 형편에 비싼 교통비 내며 집보러 다녀준것도 너무 고마웠다. 집은 결국 내가 운좋게 온라인 지원한데가 붙어서 Myrte는 (우리가 살 집에) 이사가서 잘 지내는 중이다. 

네덜란드에 가게되면 같이 살 원룸!

 

나는 어떠했나? 

졸업 후 본가에 지내게되면서 한동안은 네덜란드 집 알아보랴, 각종 회사와 대학에 지원하랴 매우 바빴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최소 한군데의 대학에서 화상면접을 보는데 성공했으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래도 자기소개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자기 PR능력 및 글쓰기 능력을 많이 키운것 같다. 9월에서 11월 초까진 그렇게 네덜란드에 정착할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파트너 거주허가증을 결국엔 지원하게 되었지만 지원조건중 하나인 여자친구의 경제적 능력부분이 살짝 애매해진 탓에(말하자면 길다 ㅎ) 네덜란드 입국시기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이 부분은 네덜란드의 외국인청(IND)에서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유도리있게 넘어가줄 수 도 있고 엄격하게 해석하면 나의 거주허가증이 안나올 수 도 있는거라 입국을 앞두고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그 탓에 결국 여자친구에게 약속했던 12월 5일에 출국하지 않게되었고 출국일이 언제가 될지 애매해지면서 또한번 여자친구에게 많이 혼났다 ( 또 한번이란 표현은 사실 맞지 않다 매번 여러번 늘 혼나거나 싸웠으니)

여자친구는 내가 네덜란드에 오는 것을 전제로 미리 가서 집알아보고 취직하고 목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이 모호함에 대해 화가 많이 났었으나 나 또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네덜란드에서 정착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도 있다는 리스크가 있어서 욕심과 이성적 판단 사이에서 많은 내적갈등을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선택의 어려움은 기준이 없기때문이라고. 그래서 내가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가 고민을 시작했고 내가 잠시 잊었지만 나는 네덜란드에서 거주하며 커리어를 쌓는것이 내 목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세기게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 뭐 당연한거 아니냐할지는 모르지만 이 목표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게 내가 가진 여러 선택지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기는데 큰 도움을 줬다. 여자친구랑 엄마는 나에게 그냥 지금 네덜란드 가서 있다가 거주허가증이 거절되면 한국에 와서 취직을 하건 박사를 지원하는것도 알아보라고 했었고 나 또한 그것도 좋은 선택지라고 줄곧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이 안됐을 때의 차선책이긴하다. 하지만 네가 네덜란드에 가는 것을 목표로 잡은 이상 한국에서 취직/박사를 하는 선택지는 더이상 좋은 선택이 아닌것이다. 한국-네덜란드 협연이나 해외파견으로 장기간 네덜란드에서 거주하고 일할 기회로 작용하는게 아닌 이상에야, 어처피 한국에 향후 몇년간 머물러야하는 옵션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왜 지금까지 토플을 치고 유럽 박사를 지원했으며 왜 최근엔 네덜란드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가? 1년간 네덜란드에 정착가능한 조건을 만들고자 지금까지 노력해온것이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시설원예 분야, 특히나 식물의 생육을 최적화하고 수확량을 예측하는 모델링 분야는 네덜란드가 가장 선진화되어있다. 각종 학회에 가서 숱하게 봤다. 한국의 수많은 농업 연구원들과 연구기관들이 네덜란드인들의 시설재배방식 및 연구방식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많이 간다는 것을. 네덜란드의 유일무이 연구기관이자 학교인 WUR은 오랜시간 농업분야에서 대학랭킹 1위를 유지해오고 있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네덜란드에서 원예분야 데이터 분석가로 커리어를 구축해가는 것은 내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2. 여자친구가 네덜란드인이고 나는 네덜란드의 문화를 체험해보고싶다. 직설적이지만 효율적인 네덜란드식 의사소통방식이나 이들의 식문화, 육아 및 교육문화 등 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있다. 네덜란드는 원예 뿐만 아니라 건축으로도 유명한 나라이며 이들의 언어는 영어 및 독일어와 유사한 면이 있어서 난이도가 외국어 치곤 괜찮은 편이다. 

3. 국제연애 못지않게 해외유학 및 해외취업 또한 내 오랜 꿈이기도 했다. 실제로 교환학생 갔던 스위스에서의 유학경험이 좋게 남기도 했고. 해외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한국이나 네덜란드나 정말 사람사는게 다 똑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지 아니면 문화가 정반대인 나라인 만큼 외국인들 틈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게될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그래서 내가 해온것과 내가 하고 있는 것, 그리고 미래에 하고픈것을 되세기며 나는 네덜란드에 정착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한 Plan A는 파트너 거주허가증이었으며 조건을 맞추기 위해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으므로 이젠 한국에서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이게 떨어 질 경우 의존할 수 있는 다른 옵션들 또한 알아보고 모두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내가 준비한 것들의 결과는 예정대로라면 내년 2월 안에는 나와야하므로 이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들을 Myrte에게도 설명하며 2월엔 무조건 가겠노라 말했고 그제서야 Myrte의 불안도 조금은 잠재울 수 있었다, 

 

한해동안 정말 숱한 선택의 기로에 섰었고 우유부단한 내 성격상 무언가를 결단내리는 과정이 참 힘들었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조언? 잔소리? 참견?)을 아끼지 않아준 주변 사람들 때문에 많이 괴롭기도 했고 끝끝내 내린 결정들이 잘못되었을 때 먹는 핀잔들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부딪히면서 더디지만 조금씩 성장해감을 느껴가고있다. 이를 테면 실수가 잦아 주변의 신뢰를 못사서 여러모로 괴로운 상황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걸핏하면 사과하고 혼나면 주눅들기 일쑤였지만, 지금도 그러지만, 그래도 이제는 생각의 방향을 서서히 바꿔가고있다. 실수를 하지 말자! 완벽하자! 보단 실수를 안하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실수시 대처는 어떻게 해야하나? 등등 발전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사소한 일도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라는, 그러면 실수해도 사람들이 너그러이 생각할거라는 누나의 조언도 잊지않고 반영하고자 노력중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에서 오는 서러움, 낮은 자존감은 늘 힘들지만 그래도 계속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중이다. 

더 많은 글을 쓰고싶지만 그건 자고 일어나서 작성해야겠다.